공동체 신앙 – 이강건 빈센트 신부, (북가주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신부)

Submitted by holyspirit on Sun, 10/30/2011 – 02:10

공동체 신앙

이강건 빈센트 신부

(북가주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신부)

 

  1. 공동체란?

① 사전적 의미

공동체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으로서 생활과 운명을 같이하는 소규모의 조직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단체는 공동의 목적을 이룩하기위한 두 사람 이상의 집단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사회적으로 이해되는 공동체와 단체라는 용어는 차이 없이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② 교회적인 입장

교회적 입장에서의 ‘공동체’와 ‘단체’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은 표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구 분 목  적 존속기간 구 성 원 친교의 범위 공동체의 성격
공동체 공동적이고 보편적인 목표 항구적 제한이 없다. (남녀노소, 지역 등의 구분이 없다) 울타리 없는 우정 다양성 안의 일치
단  체 전문적이고 고유한 목적 일시적 획일적, 제한적

(구성원만을 위해서)

결합력, 회원들로 제한 배타적

 

실제로 ‘공동체’(community)의 어원에 해당하는 희랍어 ‘Κοινωνια’(코이노니아)는 신약성경 안에서 교회와 관련된 중심적인 개념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공동체는 교제, 친교, 영적 교섭, 협조, 긴밀한 관계, 관대함, 도움, 기부금, 참여, 나눔 등의 뜻을 가진다. 이 낱말은 상호적인 관계, 즉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강조하며 외형적인 숫자적, 양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인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1. 공동체의 필요성

① 공동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 원리이다. – 성서신학적 요청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발생한다. “양떼”로 표현되는 공동체성, “포도나무의 가지들”로 표현되는 공동체성, “건물”로 표현되는 공동체성이 교회이다. 그래서 클로스터만은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가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본질적인 존재원리요, 교회의 본래 존재양식이다. 이 공동체는 구원 공동체로서 세상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구조와 직책을 갖추면서 자기 쇄신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이 개별 공동체는 아무리 작다 하여도 온전한 의미에서의 교회, 곧 에끌레시아로 호칭될 수 있고, 그런 까닭에 전체 공동체의 고유성과 본질을 고스란히나눠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라고 말이다.

 

② 현대 사회 구조가 공동체를 요구한다. – 사회학적 요청

그라이나커는 사회학적인 진단을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특히 도시화된 사회에서 교회는 “공동체 교회”로 탈바꿈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종교 공동체가 지는 특성에 대하여 번째로, 규칙적인 전례 집회의 성격을 든다. 번째로, 자발적 결단의 성격을 든다. 번째로, 모든 성원의 공동 책임성을 든다. 번째로, 선교적 성격을 든다. 다섯 번째로, 세계 개방성을 든다. 이것이 기타 공동체와 구별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하여튼 그는 변화된 사회 속에서 “공동체 교회”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부합한 조직화가 요청된다고 말한다. 그라이나커는 사회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현대 도시 사회의 복잡 다양한 구조와 다원적인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종래의 거대하고 단색적인 존재방식에서 지역적 특색과 다양한 직능을 반영한 공동체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③ 신앙 및 인격의 정체성 형성과 유지에 공동체가 필요하다. – 집단 심리학적 요청

디터 에마이스는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 조직이 신앙생활에서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정체성”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격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 다시 말해서 사회화와 문화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며, 이는 사교성, 행동 양식, 가치 체계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여튼 건강하게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격적 친교의 마당인 소그룹 조직 곧 작은 공동체가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친교의 마당을 제공해야 하고, 인격적인 대화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사목자는 다음의 세 가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번째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번째로, 제도교회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소그룹을 조직해야 한다. 번째로, 협조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④ 인간은 속성상 공동체를 지향하고 요청한다. – 기초 신학적 요청

오스트리아의 신학자인 파울 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 사회의 정신사를 보면 “관계”보다 “하나됨”에 우선권을 두어 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상호관계를 소홀히 취급할 수밖에 없는 정신사조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정신사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관계적인 존재 이해 및 인격 이해가 이제부터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육화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존재 이해를 하게 하였고, 우리의 인격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육화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는 철저한 낮춤이다.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바닥으로내려오심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예수님께서 만드시고자 하신 공동체의 모습은 “바닥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성이 중요한 “바닥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베스는 “어떤 값을 치르고라도 이 바닥 공동체를 새로이 건설해야 할” 필요가있다고 역설한다.

 

  1.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

① 공동체의 중요성

시편 133편을 보면 공동체 생활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것인지를 알려준다. 즉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사는 일!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헤르몬산에서 시온산 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곳은 야훼께서 복을 내리는 곳, 그 복은 영생이로라.”라고 쓰고 있다.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 타고 흐르는 기름”과 “옷깃으로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무척이나 좋다는 의미일 것임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시편 133편 첫머리에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도 즐거울까!”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태오 18장 20절을 보면 공동체 생활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임을알려준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는 예수님의 현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즉 성경은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공동체 생활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기쁜 일이고, 공동체 생활은 그 자체가 예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아니라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② 바람직한 공동체의 기본 조건

마태오 18장은 공동체에 관한 예수님의 중요한 설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개방되고 열려진 공동체, 용서하는 공동체, 마음을 모아 일치하는공동체에 대해서 전해준다.

개방되고 열려진 공동체란?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는 나약함을 상징하고, 어른들 세상에서 소외된 존재를 상징하는데, 이들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면 바람직한 공동체의 기본 조건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 소속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돈으로 무엇을 사는 법이 없지만 자동차만은 반드시 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 동족을 찾아가는 데 필요하기때문이란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형제적 유대이다. 그들의 소중한 이 유대는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죽어갈 경우 그것을 감지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의 인디언 아이들의 예이다. 그들에게 문제를 주면서 제일 먼저 답변하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면 모두 함께 깊이 의논을하여 똑같이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패자로 물러서게 만드는 그런 일은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결국 승자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소외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나 캐나다의 인디언 아이들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본질인 소속감에 대해서 일깨워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인간은 어디에든 소속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한 속함이 아니라, 가면적 속함이 아니라 끈끈한 유대가 있는 소속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동감

인간의 공동체성(사회성)은 “동감”(sympathy)에 근거한다. 즉 “동감”을 통해서 형제, 아니면 이웃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동감”은 기쁨, 슬픔, 고통, 환희, 분노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열정에 대한 우리의 동포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에게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무도한 폭한이나 사회의 법률을 아주 극렬하게 위반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안에서 “마음을 모아”(마태18장19절) “한 마음이 되어”(사도2장46절) 기도했다는 것이고, 이는 공동체 구성원이 같은 동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여튼 형제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는 동감,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는 동감, 고통스러울 때 함께 고통에 참여하는 동감 등등이 매우 필요하다.

 

 용서

“예수님은 사도들로 최초의 공동체를 구성하실 때, 모든 면에서 무척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로 작정하셨다. 베드로(덤벙대고, 급한성격), 마태오(세리), 시몬(다혈질적임), 유다(계산적임) 등. 이들은 스승이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함께 어울리는 일이 없었을 사람이다.”결국 이를 요약하자면 첫 번째로,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공동체 구성원들은 예수님의 모범대로 무척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로 작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이끄심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한번도 만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공동체를 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즉 유다의 배반과 같은, 베드로의 배반과 같은 체험을공동체 안에서 할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때 골로사이 3장 12절 이하의 말씀처럼 해야 한다. 즉 “여러분은…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처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동체에 소속한 이유가 용서의 신비를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내 실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

① 초대교회 사도 공동체

유다는 주님을 30은전에 팔아 넘긴 후 “땅에 거꾸러져서 배가 갈라져 내장이 온통 터져 나왔습니다.”(사도1장18절) 이렇게 12제자 공동체는초대교회부터 유다의 자리를 채워야하는 문제에 당면하게 되고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뽑았더니 마티아가 뽑혔다. 이렇게 초대교회 사도 공동체는 자리를 채워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를 해결한다.

그뿐 아니라 사도 공동체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회의를 하기도 한다. 그 당시의 문제는 이방인 할례 문제, 제물로 받쳤던음식에 대한 문제 등등이었다. 사도 공동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의 했고, 회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방인들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다만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말고,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사도15장20절)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공동체는 유대인 풍습과 이방인 풍습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문제을 안고 있었다.

 

② 고린토 공동체(교회)

고린토 공동체는 신자들 간의 분열이 문제였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호소한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라고 말이다. 이처럼초대교회 고린토 교회의 문제는 분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바오로파다. 나는 아폴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하며 분열되었다는 것을 전해들은 바오로는 “그리스도가 갈라졌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린것이 바오로였습니까? 또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단 말입니까?”라고 말한다. 이처럼 고린토 공동체는 분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상의 문제 외에도 영지주의의 문제, 거짓 사도들의 문제, 이방문화의 문제 등등이 있다. 이처럼 초대교회 공동체는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③ 독특한 질서가 있는 공동체

공동체의 문제 해결은 독특한 질서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교회는 전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를 외면하기보다는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이상한 언어와 예언의 문제

고린토 전서 14장에 나오는 이상한 언어와 예언에 대한 문제의 해결은 교회 안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는데, 그 질서는 다음과 같다.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모든 것은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할때에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해석할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을쓰지 말고 혼자서 말하거나 하느님하고만 말하십시오.”라는 질서를 만들었다. 즉 교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해석할 사람이없으면 그런 말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 분열의 문제

교회내의 여러 분열의 문제는 일치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즉 에페소 4장 1절 이하를 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한 분이십니다.”라는 일치의 질서를 만든다. 다시 말해서 일치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 내의 분열은 일치의 질서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일치의 원리를 만들어낸다. 즉 일치의 원리는 신비체의 원리라는 것이다. 에페소 4장 16절을 보면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전한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일치의 원리는 신비체인 것이다.

 

 이방인의 문제

이방인의 문제 해결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서를 만들었다. 에페소 4장 17절 이하를 보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마음이완고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에페서 4장 25 – 5장 5절과 콜로사이2장20 – 3장25절까지 그리스도인의 질서 잡힌 삶에 대해서 전해준다.

이처럼 이방인의 문제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질서를 만들었다. 빛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페5장6 – 20절)를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 기타의 여러 문제

결혼의 문제(코린후 6장14절 이하), 남편과 아내의 문제(에페 5장2 1절이하), 자녀와 부모의 문제(에페 6장1절 이하), 율법과 믿음의 문제(갈라 3장1절 이하), 헌금의 문제(고린후 8장1절 이하), 종과 주인의 문제(에페 6장5절이하), 세속의 유치한 원리에 대한 문제(콜로2장6절 이하), 게으름에 대한 문제(테살후3장6절이하) 신도들을 대하는 문제(티모전 5장1-2절) 과부를 대하는 문제(티모전5장3 -16절), 원로를 대하는 문제(티모전 5장17-25절), 음행의 문제(코린전5장1절이하), 교우끼리의 송사 문제(코린전 6장1절 이하) 등등은 교회의 질서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말할 수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의 질서는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야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으로써 공동체 역시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만한다. 그 문제의 해결은 그 공동체 안에 새로운 질서들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만든 공동체는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생각해야 할 것이다.

 

맺으면서

공동체 신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린 전 12장 7절의 말씀이라든지, 12장 12 – 31절의 말씀을 이해해야 한다. 코린 전 12장 7절을 보면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공동번역)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12장12절 이하에서는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은 공동체 신앙에 관한 것이다.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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